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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맞추다

안경

그 동안 시력이 좋지 않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중학생 시절에는 두 눈의 시력이 모두 1.5 근처였는데, 밤에 침대에 누워서 전자기기를 많이 본 탓인지 한쪽 눈의 시력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어서 시력을 재 볼 일이 없었는데, 대학생때 다시 검사를 해 보니 왼쪽 눈이 0.1, 오른쪽 눈이 1.0으로 나왔다. 한 쪽 눈과 다른 쪽 눈의 시력이 많이 차이나면 덩달아 시력이 좋은 쪽의 눈도 나빠진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지만, 크게 나빠지면 얼마나 나빠지겠냐는 생각에 딱히 안경이나 렌즈를 알아보진 않았다.

그 후로도 별 문제 없이 지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시력이 점차 나빠지는 징후가 몇 가지 보였다. 텍스트 에디터와 터미널의 글자 크기를 점점 크게 설정하기 시작했고, 눈을 뜨고 있는 것 만으로도 피로가 누적되는 기분이 들었다. 노트북 화면을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글자가 잘 안 보여서 눈에 힘을 많이 주게 되고, 덩달아 하루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크게 줄어들었다. 신체적인 피로가 누적되어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작업 효율이 바닥을 쳤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 주에 안경원을 찾았다. 한 번도 안경을 써 보지 않았던 사람이 안경을 쓰려니 어느 안경테를 골라도 내가 쓰면 이상해보였다. 그나마 덜 이상하게 보이는 안경테를 골랐고 시력 검사실로 들어가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검사가 끝난 후, 안경사 분께서 지금까지 어떻게 안경을 쓰지 않고 지냈냐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마지막 검사 이후로 시력은 더 나빠져 있었는데, 그래서 바로 맞는 도수의 안경알을 맞추기는 힘들고 조금 낮은 도수의 안경을 먼저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한 쪽은 원시이고 다른 한 쪽은 근시인 부동시라 안경 착용 후에는 거리 감각이 어색해질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안경을 쓰기 시작한 직후에는 안경사 분의 이야기처럼 거리 감각이 어색해져서 계단을 내려갈때나 장애물을 피할 때 온 신경을 곤두서게 되었다. 눈 가장자리에 신경쓰이는 검은색 테두리가 보이는 것도 계속 의식하게 되었다. 마침 안경을 맞춘 다음날이 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안경에 물방울이 튀는 것을 보니 앞으로 불편해서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안경을 쓰고 며칠이 지나니 금방 익숙해졌다. 그 동안 이걸 어떻게 읽으면서 지냈나 싶을 정도로 안경 없이는 도저히 노트북에 있는 글자를 또렷이 읽을 수가 없었다. 시력이 서서히 악화되어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했던 탓이 큰데, 그만큼 나도 모르게 받고 있던 스트레스가 꽤 크다고 생각하니 이제서라도 안경을 맞춘 것이 다행으로 느껴졌다.

아직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 적응이 안 된다. 한 달 쯤 후에 제대로 된 도수로 안경을 맞출 때 안경테도 다시 맞추려고 하는데, 그 때 제대로 안경테를 골라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