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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매년 살고 있는 집의 계약 만료 기간이 다가올때면 뻔한 고민을 다시금 하게 된다. 이번이야말로 이사를 할까, 아니면 그냥 조금 더 살까? 이 고민에 대한 레퍼토리는 매년 해가 흘러도 바뀌지 않았다. 더 크고 쾌적한 집으로 옮기고 싶지만 이리저리 일에 치이다 보면 옮기고 싶은 동네를 찾는 것도 여간 보통 일이 아니고, 돈을 쥐어짜서 아끼기보다는 쓰고 싶을 때 쓰는 것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금전적인 여유가 엄청나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올해는 조금 더 살고 내년에는 몇 달 전에 미리미리 동네 조사를 조금 더 하자, 이런 식으로. 경기도 밑자락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게 싫어서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던 나였기에, 회사가 완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는다는 점도 이사를 미루는데 한몫 했다.

올해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계약 연장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 달 쯤 전부터 이번에야말로 조금 더 큰 집으로 갈까 생각하면서, 출퇴근 시간을 정해두고 적당한 동네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지은지 얼마 안 되었고, 내부 인테리어가 봐줄 만 하고, 편의시설이 인접하고, 출퇴근이 편리하고, 감당 가능한 가격대인 집’ 이라는 유니콘같은 집을 찾다 보니 검색을 몇 번 하다가 포기하는 날들이 하루 하루 지나갔다.

지금 살고 있던 집이 원룸이지만 분류는 아파트라서, 냉장고나 세탁기 등 웬만한 가전을 모두 구매한 상태인 점도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신축 오피스텔들은 빌트인 가전이 모두 갖춰진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런 집으로 이사가면 내가 구입한 가전보다 별로인 가전을 쓰면서, 그동안 사 둔 가전을 염가에 판매해야 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가전이 없는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다.

그렇게 귀찮음이 점점 커지고 ‘이사는 내년의 나에게 미루고, 올해는 편안히 있자’ 같은 생각을 하던 어느 날. 일찍 퇴근을 하고 애플워치 운동 링이 아직 반도 안 찬 걸 보고 집 주변을 걷다가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 밖으로 나섰다. 그날따라 평소에는 신경을 쓰지 않던 집 근처 부동산이 눈에 들어왔고, 어차피 집에 들어가도 할 게 없으니까 같은 생각을 하면서 가까운 부동산으로 들어갔다.

무심결에 시작된 집 찾기

보통 부동산에 집을 알아보러 갈 때는 미리 전화로 매물을 확인하고 가기 때문에, 중개사 분께서 바로 매물을 보여주시곤 하지만, 나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무작정 들어가다보니 “이 근처 집 좀 보러 왔는데요…” 같은 애매모호한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4년 전에 이 근처로 이사 올 때도 알아봤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신축 오피스텔은 거의 없어서, 생각하고 있던 조건을 많이 포기하고 ‘지금 집보다 전용면적이 넓은 집’ 을 위주로 물어보았다. 내 집이 다른 원룸보다 조금 큰 축에 속하는 집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선택이 폭이 매우 좁았다. 부동산을 서너 곳 다니면서 완벽하지는 않은 매물을 보기로 약속을 잡고 집에 들어가려는 찰나에 한 건물 안쪽에 있던 부동산을 보고, 여기만 돌아보고 집에 가자 하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다행히 문을 닫지 않아서 여러 질문을 하기 시작했는데, 마침 내가 살고 있는 건물에 새로운 전세 매물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내 발길을 잡으려고 ‘마침’ 이라는 말을 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매달 고정 지출을 낮추려고 전세 대출을 고민하던 때라 관심이 갔다. 단지가 크지 않아서 전세 매물이 거의 안 나오기도 하고…

마음을 한 번 먹으니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절차가 진행되었다. 다음날 오전에 집을 보고, 가계약을 하고, 기존 집주인과 연락해서 날짜를 진행하는 등 며칠간은 쉴 새 없이 이곳저곳 전화를 돌리며 하루가 흘러갔다.

대출

전세로 옮기면서 대출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은행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상담을 했는데, 주거래 은행이었던 신한은행과 기업은행의 미적지근한 분위기에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오히려 메이저 은행 중에는 거래를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농협이 금리 조건이 가장 좋았다. (7월 기준이라 지금은 다를 수도 있다)

실제 대출은 카카오뱅크를 통해 실행했는데, 몇 가지 큰 이유가 있었다.

  • 시중 은행과 비교해서 금리가 낮은 편이다.
  • 충족해야 하는 우대 조건이 없다. 금리는 농협이 가장 낮았지만, 주거래 통장 변경과 카드, 적금 등 상품 사용 조건이 복잡했다.
  • 중도상환수수료가 없어서, 돈이 생기면 언제든지 갚을 수 있다.
  • 집주인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고, 질권설정이 들어가지 않는다. 대출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는 집주인을 설득할 때도, 집주인이 지어야 하는 대출 관련 의무가 하나도 없다보니 훨씬 수월하게 대출을 받는것에 대한 협조 특약을 임대차계약서에도 넣을 수 있었다.
  • 필요한 서류(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등)를 별도로 발급받을 필요가 없다. 필수로 제출해야 하는 서류 몇 개만 내면, 나머지는 카카오뱅크가 알아서 발급받는다.
  • 은행권 중 앱이 가장 편리하다.
예상 금리

편리한 앱으로 바로 예상 금리를 알 수 있다

처음 전세 대출을 하다보니 계약이나 대출을 진행하는 순서도 낯설었는데, 전세 계약을 체결하고 나서야 대출 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다. 그 외에도 계약 후 바로 확정일자를 받고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절차 등 각 단계마다 신경써줘야 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다른 은행권 대출에 비해 절차가 매우 간단하여 큰 무리 없이 진행을 할 수 있었다.

이사 전 준비

계약을 하고나서 남은 큰 난관은 인테리어. 처음 독립을 해서 살게 된 집은 지은 지 6개월도 안 된 신축이다보니 인테리어가 필요 없었고, 두 번째 집은 관리가 잘 되어 있기도 했고 월세로 지내다보니 도배는 부동산이 알아서 해 주었다. 이번 집은 전세로 계약을 하다보니 도배나 바닥 상태와 같은 사소한 것도 직접 신경써야 했고, 덕분에 그동안의 이사보다는 조금 더 복잡해졌다.

원래는 벽지는 실크로 고르고 마루도 갈까 하다가 합지 같은 자재도 심미성이 크게 떨어지지 않고, 이사 비용이 점점 늘어가면서 어차피 집주인 좋은 일 해줘서 뭐하냐는 생각이 커져서 합지와 장판 바닥을 골랐다. 장판이라고 하면 몇십년 전의 노란색 플라스틱 느낌이 물씬 나는 장판의 안 좋은 기억만 있었지만, 최근 장판은 마루의 느낌과 흡사한 느낌으로 나오는 것들이 두루 있어서 큰 거부감은 없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인테리어 필름 시공을 했다. 이전에 살 때도 숨길 수 없는 나이를 보여주는 부엌 가구들과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붙박이장이 집의 깨끗한 느낌을 반감시켰는데, 집에 들어올 때 마다 보이는 가구인만큼 무언가 손을 쓰고 싶었다.

데코필름 붙이기 전

데코필름 붙이기 전 붙박이장. 변색이 되어 있고 여러 흔적이 남아있다

동네에도 인테리어 집이 여러 곳 있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터넷 검색 중 발견하게 된 하우스텝이라는 곳을 통해 인테리어를 진행했다. 현장 방문을 하여 견적을 내는 작업 없이 사진 업로드로 견적 계산 및 진행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대략적인 가격대가 사이트에 모두 공개가 되어있기 때문에 바가지를 쓴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실제로 하우스텝의 가격과 일반 인테리어 업체의 가격을 비교해봐도 저렴하기도 했고.

시공을 하고 싶은 곳을 정하고, 하우스텝 웹사이트를 통해 계약을 진행하였다. 견적 확인부터 자재 선택, 그리고 스케쥴 확인까지 웹사이트를 통해서 확실하게 할 수 있다는 점 또한 호감이 갔다.

하우스텝 마이 페이지

마이 페이지에서 모든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

전세 계약을 하는 날짜와 집을 비워야 하는 날짜 사이에 여유가 일주일 정도 있어서 그 사이에 인테리어를 진행할 수 있었는데, 보통은 아침 일찍(6시에 오시는 시공 담당자님도 계셨다) 오시면 문을 열어드리고, 시공이 완료되면 결과를 확인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출입 비밀번호만 알려주고 출근을 해도 된다고는 하셨지만, 그래도 처음 인테리어를 진행하는만큼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근처에서 상주하면서 질문도 하고 진행 상황을 체크하였다.

이사 직전주

이사 직전 한 주 동안은 정말 정신없이 지냈다

마지막 날에는 업체를 통해 이사청소를 했는데, 혼자서 청소를 하면 놓칠 수 있는 화장실 구석구석이나 샷시 이음새 같은 곳도 꼼꼼히 해주셔서 그동안 이사청소를 하지 않은 것이 뒤늦게 찝찝하게 느껴질 정도로 만족도가 높았다.


이사를 준비하는 주의 대부분은 회사 리모트를 내고 아침에는 인테리어 상황을 점검하면서 원격 근무를 하고, 점심 먹고 나서는 들어갈 집의 자잘한 부분(다용도실에 떨어진 조명을 교체한다거나, 도시가스 전입 신청을 한다거나…)을 처리하고, 저녁에는 이사에 용이하도록 살고 있는 집의 짐을 정리하는 일을 했다.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깨어 있으면서, 여러 곳에서 오시는 기사님과 약속을 조율하고 관리사무소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다가다 하다보니 식사를 못 하는 날도 종종 있었다. 우리 회사야 리모트 혹은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니 이런 사치스러운(?) 일이 가능했지만, 과연 그렇지 않은 회사에 다니고 있으면 이사를 어떻게 했을지.. 생각만 해도 막막하고 반대로 내 처지가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이사

이삿날.

이런저런 일을 모두 마무리하고 다가온 이사일. 포장이사 업체를 써서 오히려 며칠 전보다는 숨을 돌릴 수 있는 날이었다. 집 구조가 조금 바뀌었기 때문에, 어느 가구를 어디에 둘 지 정도만 알려드리고 나머지는 내가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이사 또한 7시 정도의 이른 아침에 시작해서 점심먹을 쯤 마무리가 되었는데, 바로 전날까지도 비어있는 남의 집 정도로 생각이 들던 게 짐이 들어오고 나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나름 새로운 환경이라 잠이 안 오는게 아닌가 싶었지만, 워낙 정신없는 며칠이 자나갔던 터라 눕자마자 새로운 집에서의 첫 날이 지나갔다.

이사 후

이사가 끝났다고 이사 관련된 일이 완전히 마무리 된 게 아닌데, 전에 살던 집의 보증금을 돌려받고, 관리비를 정산하는 등 여러 잡다한 일에 다음 며칠간 신경을 썼다. 평일에는 정신없이 출퇴근을 하다가, 돌아온 첫 주말에 첫 집돌이(?) 주말을 보냈다.

이사 과정에 대해서는 대부분 위에 주저리주저리 적었지만, 몇 가지 알게 된 점을 더하자면…

  • 확정일자: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도 임대차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는게 가능하다. 이렇게 실제 입주를 하기 전에 확정일자를 먼저 받아야 대출 진행이 가능하다.
  • 유리 내구성 장판: 마루를 쓰다가 장판을 쓰다보니 느낀 것인데, 마루에 비해 장판에는 흠집이 엄청 잘 난다. 마루가 있는 집에 있을 때는 무언가를 떨어뜨리면 층간소음 걱정을 하거나 (휴대폰 같은) 떨어뜨린 물건을 걱정했는데, 이사 오고 며칠간은 무언가 떨어뜨리면 장판에 흠집이 가지는 않았는지 순간 걱정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 렌탈 이전: 렌탈 제품이 많으면 많을수록 일정 조율하는데 수고가 커진다. 나야 같은 건물에서 옮기는 것이다 보니 일부 기기는 철거 당일에 바로 설치까지 할 수 있었지만, 통상적으로는 철거를 하고 이사업체에서 새 집에 옮겨주면 설치를 하는 3단계로 진행이 된다고 한다. 이전 신청을 할 때도 철거와 설치를 별도로 신청해야 했다.
  • 에어컨과 도배: 기존에 있는 에어컨을 새 것으로 교체하는 것과 도배하는 것의 순서가 정말 헷갈렸다. 인테리어 업체와 조언을 구한 여러 곳에서는 에어컨을 먼저 설치하고 도배를 하라고 하고, 에어컨 설치 고객센터에서는 도배를 먼저 하라고 하고… 결국 시간상의 이유로 도배를 먼저 하고 에어컨을 교체했는데, 구형 에어컨과 신형 에어컨의 설치 위치가 달라서 도배가 안 된 틈이 생겨버렸다. 급하게 도배를 해 주신 분께 연락해서 추가금을 조금 내고 남은 자재로 구멍을 때웠다. 가장 좋은 순서는 철거 → 도배 → 설치 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도배 전에 에어컨 설치를 하는게 맞는 것 같다.
  • 남은 자재 보관: 위의 에어컨 사례를 보듯이 남은 자재를 활용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공간을 차지하지만 되도록이면 자재를 보관하는게 좋다는 사실을 장판 남은걸 버리고 깨달았다…
  • 비용 지불 순서: 인테리어, 이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시공은 (당연하지만) 소액의 계약금을 내고 잔금을 치루는 형태로 돈을 지불하게 된다.
  • 인터넷 이전신청: 이것도 당연할 수도 있지만.. 인터넷 이전이 되자마자 원래 있던 집의 회선은 사용이 불가능해진다.

책상

이사를 마치고 나니, 깨끗한 벽지 상태를 보면서 4년동안 지낸 집은 벽지 상태도 점점 나빠진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조금 어두운 원래 벽지 대신 하얀색 벽지로 도배하고, 조명을 이용해 원하는 색을 만들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합지 특유의 이음새가 보인다.

스튜디오형 원룸의 침실 부분

이전 집에는 창문에 반투명 코팅이 되어 있고, 나무로 조망이 가려진 1층같은 2층이라 커튼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사온 집은 조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고, 아침에 해가 꽤 잘 들어오고, 맞은편의 건물이 바로 보이기 때문에 무언가로 가릴 필요가 있었다. 결국 암막커튼을 구입해서 달았다.

전에 이사할 때 보다 훨씬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원래도 귀찮아했던 이사를 최대한 미루고 싶어졌다. 가능하면 대출을 많이 갚아버리고 다음 집은 임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떻게 될 지는 두고봐야겠지. 그래도 이번 이사는 내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를 많이 해 두어서, 들어올 때 기분 좋은 집이 된 것 같아 좋다.